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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함과 치밀함 그래서 소름돋는 - 살인자의 기억법

Talkative Jay 2025. 2. 11.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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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살인자의 기억법
지은이 : 김영하
출판사 : 문학동네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책의 첫 장 첫 문장부터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해서 마지막 장을 덮는데 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글밥이 여느책보다 많지 않기도 했지만 책의 내용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는 이유가 더 컸습니다.

이야기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70세 노인 김병수로부터 시작됩니다.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기억과 현실, 죄책감과 자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독특한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김병수라는 인물의 시선을 통해 전개되며, 그는 나이가 많은 퇴직 경찰이자 연쇄살인범입니다. 그의 뇌는 점차적으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어, 과거와 현재, 진실과 거짓,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범죄 소설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 죽음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1. 기억의 왜곡과 알츠하이머

살인자의 기억법은 기억을 둘러싼 복잡한 심리적, 철학적 문제를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주인공 김병수는 과거 연쇄살인범으로서의 죄책감을 지닌 인물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알츠하이머가 진행되어 그의 기억이 점차 사라지고 왜곡됩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잊고 싶지 않지만, 기억의 조각들이 불완전하게 남아 그에게 혼란을 일으킵니다.

알츠하이머는 단순히 기억을 잃는 병이 아닙니다. 이 소설은 알츠하이머를 통해 인간이 경험하는 시간과 공간의 왜곡, 그리고 그것이 자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묘사합니다. 기억이 사라지는 것만큼이나, 기억이 사라져 가는 과정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정체성의 붕괴가 두드러집니다. 김병수는 기억의 단서들을 쫓으며 자신의 과거를 다시 찾으려 하지만, 그 과거의 진실이 점점 모호해지고, 무엇이 진실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됩니다. 그가 과거의 죄책감을 씻기 위해, 또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추구하는 진실이 결국은 그를 더욱 고립시키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만듭니다.

 

2. 주인공의 내면적 갈등

김병수는 처음에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기억법으로써 외면하고자 합니다. 그는 자신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며, 자신의 죄를 부정하려는 본능적인 충동을 느낍니다. 그러나 알츠하이머가 진행되면서 그가 갖고 있던 기억은 점점 파편화되고, 그와 동시에 그의 정체성도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지만, 그 죄책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고 고뇌하게 됩니다.

김병수의 내면적 갈등은 단순히 살인자의 기억법을 따르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물음에 대한 고뇌로 확장됩니다. 그가 기억을 잃어가면서 과거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은, 결국 인간이 자신의 죄와 부정적인 과거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또한, 기억이 왜곡되고 사라지는 동안 주인공은 점점 자아의 의미를 잃어갑니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도, 다시 그 자신을 부정하려는 반복적인 과정은 우리 모두가 경험할 수 있는 정체성의 위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옆집 개가 자꾸 우리 집을 들락거린다. 
마당에 똥도 싸고 오줌도 지린다. 나를 보면 짖어댄다. 여기는 내 집이다. 이 똥개새끼야.
퇴근한 은희가 그 개는 우리 개라고 한다. 거짓말이다. 은희가 왜 내게 거짓말을 할까.


3. 인간의 죄와 구속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죄와 구속입니다. 김병수는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는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는 구속을 원합니다. 그는 알츠하이머에 걸리면서 기억이 흐려지고, 그가 저지른 범죄와의 연결이 점점 더 멀어져 갑니다.. 이 점에서 그는 일종의 자유를 얻는 듯하지만, 동시에 그가 원하던 구속은 실현되지 않습니다. 구속을 받으려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저지른 죄와 마주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진정한 구속이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김병수는 끝내 그 구속을 받지 못합니다.

범죄자의 죄책감은 죽음과 가까워질수록 더욱 깊어집니다. 김병수는 자신의 죄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지만, 알츠하이머가 그를 더욱 무력하게 만듭니다. 그의 기억이 사라지면서 그는 그 죄책감을 회피할 방법을 찾으려고 하지만, 결국에는 그것을 온전히 마주하는 법을 배웁니다. 소설의 끝에서 그는 결국 스스로가 저지른 악행을 마주하고, 그것이 그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깨닫게 됩니다. 이 과정은 구속과 자아 회복을 위한 필수적인 단계로 보입니다.

 

그래 이건 망상이 아니야. 분명히 뭔가가 없어졌다고. 일지와 녹음기는 몸에 지니고 있으니 무사했지만
다른 무언가가 사라졌다.
그래, 개가 없어졌다. 개가 없어졌어.
아빠? 우리 집에 개가 어디 있어요?

 

 

4. 형이상학적 질문과 철학적 탐구

이 소설은 단순히 범죄와 범죄자의 삶을 다루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 존재와 기억, 정체성에 관한 형이상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김병수는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에 부딪히게 됩니다. 기억이 변하고 왜곡되면서 그의 정체성도 변해가고,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됩니다. 이 소설은 단순히 한 개인의 기억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요소로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탐구이기도 합니다.

이와 함께, 소설은 인간의 내면적 갈등을 다루며 우리가 얼마나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타인의 삶에 의존하는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집니다. 김병수의 살인과 그에 대한 죄책감, 그의 기억의 흐릿함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고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성찰이 존재합니다.

 

우리 집 개가 아닌데... 대문을 닿아놓든지 해야지 아무 놈이나 막 드나들고..
전에도 있던데요. 이 집 개가 아니에요?
못 보던 놈이 요즘 들락거린다니까요. 저리 가 

 

 

5. 문체와 서술 기법

김영하의 글은 직관적이고, 간결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전개가 특징입니다. 그는 심리적인 면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주인공의 내면의 혼란과 복잡함을 명확하게 전달합니다. 특히, 주인공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독자는 그의 불확실하고 왜곡된 기억을 그대로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서술 기법은 독자에게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그가 처한 상황을 더욱 실감 나게 만듭니다. 또한, 이야기의 전개가 선형적이지 않고, 기억이 흐트러진 상태에서 사건들이 뒤엉키며 펼쳐지기 때문에 독자는 주인공의 혼란을 느끼고 함께 그 미로를 따라가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6. 결론

살인자의 기억법은 기억과 자아, 죄책감과 구속,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철학적 탐구를 중심으로 한 소설입니다. 김영하는 알츠하이머라는 질병을 중심으로, 기억의 왜곡과 그로 인한 내면적 갈등을 탐구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중요한 질문들을 던집니다. 주인공 김병수는 과거의 죄를 잊으려 하지만, 기억의 혼란 속에서 결국 자신을 마주하게 되며, 그것이 구속을 위한 첫걸음이 됩니다. 이 소설은 단순히 범죄자의 이야기만을 다루지 않고, 우리 모두가 직면할 수 있는 기억과 정체성의 문제를 되새기게 합니다.

 

사진 : 살인자의 기억법 포스터

 

* 나중에 알았지만 이 책은 설경구 주연의 영화로도 개봉되었습니다. 미스터리 한 스릴러로 섬뜩한 설경구와 열연이 돋보인 김남길의 연기가 일품입니다. 특히 마지막 반전은 소름 돋습니다.(스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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